집집마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일 때면 단골 놀이 메뉴로 등장하는 화투, 때로는 어르신들의 소일거리로, 때로는 가족간의 친목 도모를 위한 수단으로, 때로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는 게 화투인데요, 오늘은 재미삼아 그 화투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화투(花鬪)는 말 그대로 꽃패를 들고 벌이는 싸움, 또는 시합인데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화투는 원래 일본에서 만들어진 놀이인데요, 일본에서는 화투를 하나후다(はなふだ [花札]) 라고 부릅니다, 정작 일본에서는 요즘은 화투를 즐기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많은 분들이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화투와 관련된 숨은 이야기 또는 화투판에서 자주 쓰는 일본어 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화투 속 미스테리한 인물
화투장을 보면 유일하게 등장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비광에 있는 우산 쓴 할아버지입니다.
막상 할아버지라고 써놓고 보니, 생각보다 얼굴이 젊어 보여서 당황스럽네요. 왜 저는 계속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쩄든, 이 사람은 실존했던 인물로 오노노 도후(小野道風: 서기 894년-967년) 라는 일본의 유명한 서예가인데요, 한국으로 치자면 한석봉 또는 추사 김정희 같은 서예가로서 입지전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합니다.
한석봉과 그 어머니의 "아들아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라는 일화가 유명하듯이, 오노노 도후는 한때 자신이 서예에 재능이 없다 여기고 방황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불어난 개울물에 휩쓸리던 개구리(또는 두꺼비)가 탈출하기 위해 수양버들에 뛰어오르는 모습을 봤는데, 거듭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뛰어올라 결국 수양버들에 뛰어오른 개구리를 보고, "저런 미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거늘 내 어찌 중간에 포기해서야 되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어 불굴의 노력을 한 끝에, 결국 유명한 서예가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화투패 속에도 나름 이런 교훈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그리고, 위의 일화에서 유추 가능하겠지만 왼쪽 밑에 옛날 통닭처럼 생긴 생명체는 치킨이 아니라 개구리(또는 두꺼비)라는 사실은 알아둬야겠죠.
그리고 또 하나 논란이 되고 있는 생명체는 바로 이 똥광 속 새의 형상을 하고 있는 조류인데요.
혹자는 닭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그냥 똥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실 저 생명체의 정체는 봉황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유사이래 한국에 와서 가장 역대급 신분 하락을 맛본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덤으로, 사실 12월을 나타내는 똥은 오동나무를 그린 건데요, 오동이라고 부르다가 그게 똥으로 와전되었거나 그림의 디테일이 무너진 탓에 똥처럼 보인다고 해서 똥이 되었다는 게 일반적인 설입니다.
화투 속에 숨겨진 일본어
이제는 어학과 관련된 카테고리로 넘어가서 화투에서 유래한 일본어 표현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 대표적인 두 가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화투장의 10월(풍)을 보면 사슴이 있는데요, 저 사슴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에서 생긴 표현이 있습니다.
시카토스루(しかとする) 라는 표현인데요, 일본어로 시카(しか)는 사슴을, 토(とお)는 숫자 10을 나타냅니다.
위 화투장에서 10월 패의 사슴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말로, 무시하다라는 뜻으로 흔히 쓰입니다.
그러고 보니 왠지 저 사슴이 약간 기분 나쁘게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눈빛이 살짝 거슬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의 그림처럼 화투패를 7장 받았는데, 전부 껍데기(쭉정이)만 들어오고 광이 하나만 있는 경우를 피카이치(ぴかいち)라고 하는데요, 이는 어떤 무리에서 홀로 출중하다는 의미로, 군계일학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요, 우리가 휘황찬란하다라는 의미로 흔히 쓰는 삐까번쩍이라는 말은 일본어로 반짝반짝이라는 의미의 피카피카(ぴかぴか)에 한국어의 번쩍이 합성된 말입니다.
화투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가급적 반짝반짝이라는 우리말을 사용하는 게 좋겠죠?
이건 화투랑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포켓몬에 나오는 피카츄도 앞에 피카는 피카피카(ぴかぴか)에서 유래한 이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위의 사진이 피카츄 인형이 맞는지는 저도 정확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딸아이가 한때 포켓몬 덕후라서 인형을 많이 사모으기는 했는데, 저는 아무리 봐도 똑같아 보여서 잘 모르겠네요, 혹시 아시는 분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쨌든, 피카츄가 최소 전기기사 자격증은 갖고 있을 법한 캐릭터임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제 생각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투판에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일본어
마지막으로 화투가 일본의 문화이다 보니, 화투판에는 자연스럽게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데요, 오늘은 대표적으로 잘못 사용하거 있거나,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말들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세 장의 패를 모은 걸 고도리라고 하는데요, 고도리는 일본어로 새를 나타내는 토리(とり [鳥])에 숫자 5 (ご [五])가 합쳐진 말로 고도리는 말 그대로 세 다섯 마리라는 뜻입니다. 이걸 틀렸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정확하게는 마리를 나타내는 -ひき [匹·疋] 라는 단어도 들어가야 하니까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봐야겠죠.
그 외에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요
- 쇼당: 소우단(そうだん [相談]) 은 상담하다라는 뜻인데요, 의미는 나름 맞아 떨어지지만 화투판에서는 조금 다르게 쓰이기는 합니다.
- 나가리: 나가레(ながれ [流れ])는 흐름을 뜻하는 말인데요, 무효가 됨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고로 의미는 맞게 쓰고 있지만 발음은 나가레가 정확한 것입니다.
- 독고다이: 톳코타이(とっこうたい [特攻隊])는 특공대라는 뜻인데요, 자살 특공대에서 유래한 말이 화투판에서도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 화투 속 숨겨진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써봤는데요, 혹시 제가 빠트린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에 일상 생활에서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쓰고 있는 일본어에 대해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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